전체 글 55

우리가 코노에 가는 이유

어제 남자친구와 코노(코인 노래방)에 갔다. 둘 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편인지라 코노에 가는 걸 즐기는 편이다. 나의 학창시절에도 오락실 한 켠에 코인 노래방이 있는 곳이 있었으나, 지금처럼 코노가 대중화되지는 않았었다. 그 당시에 노래방은 시간제로 불렀는데 노래방 아주머니에게 서비스를 부탁해서 10분씩 여러 번 더 넣어주시는 재미가 있었다. 또 제한된 시간 내에 많은 노래를 부르기 위해 1절만 부르기, 간주를 다 건너뛰는 마디 점프 사용하기, 마지막에 부를 곡은 신중하게 선택 한 후 1분 남겨놓고 부르던 노래 얼른 끄고 마지막 곡 입력하기 등의 스킬을 사용하곤 했다. 2~3년 전부터 여기저기 코인노래방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코인노래방은 1곡당 금액이 정해져 있으니까...

카테고리 없음 2019.11.24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

"그때 알게 되었어 난 널 떠날 수 없단 걸 우리 사이에 그 어떤 힘든 일도 이별보단 버틸 수 있는 것들이었죠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악동뮤지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거지" 中 올해 나온 신곡 중 가장 많이 들었던 곡. (사실 어떤 노래에 꽂히면 몇 십번이고 반복해서 듣는 경향이 있다. 유튜브 노래 1시간 반복재생은 그런 면에서 나같은 사람을 위한 선물인 듯 싶다.) 사랑이 왔다 떠나 갈때면 나는 그 사랑을 한 기간을 훌쩍 넘어서까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은 후에야 비로소 엉거주춤 일어나 한걸음 한걸음 걸어나갈 수 있었다.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단단히 앉아있는 옛사랑의 모습에 울적해지기도 스스로 미화해버린 과거의 사랑을 그리며 행복했던 찰나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

카테고리 없음 2019.11.23

당신의 소울푸드(soul food)는 무엇인가요?

몇 달전 온라인 게시글에서 이런 글을 보고 소리내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 미국에도 국밥이 있었다면 총기사고가 현저히 줄었을꺼라고. 미국놈들이 뜨근한 국밥을 먹으며 몸도 마음도 녹일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총기사고가 많지는 않았을텐데 안타깝다는 우스개 소리. 물론 미국에 총기사고가 많은 건 총기소지가 합법화된 것이 가장 큰 이유고, 국밥을 판다한들 미국 사람 입맛에 맞을지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국밥이 우리나라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소울푸드라는 건 와닿았다. 나만 해도 일주일에 1번 정도는 국밥 특히 순대국밥을 먹곤하는데,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음식점이 순대국밥집이어서 자주 가기도 하지만, 뭔가 업무가 많고 힘을 내서 오후에 일해야 할때는 든든히 먹으려고 그 집에 가곤한다. 뜨끈한 국물에 밥 한숟가락씩 말..

카테고리 없음 2019.11.22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되는 것들

스물세살, 처음으로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대리님, 과장님이 밥 사주실 때마다 ‘학생이어서 좋겠다’, ‘어려서 좋겠다’, ‘교환학생 곧 간다니 좋겠다’ 하며 이번주도 로또가 안됐다며 로또만이 답이라는 얘기를 늘어놓곤 했다. 국내에서 탑인 식품회사를 다니면서 매일 간식으로 도너츠와 커피도 나오는 좋은 회사인 것 같은데 왜 늘 로또 타령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스물일곱, 입사 후 한창 일을 많이 하던 대리 시절, 전날 야근하고 아침에 출근하면 사수 모니터에는 늘 클리앙이라는 커뮤니티가 떠있었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낄낄거리며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사수가 미웠다. 집중해서 같이 일을 쳐내도 모자랄 판에 오전 시간은 늘 커뮤니티를 끼고 살고, 모니터 한 켠에는 늘 ‘무한도전’ 영상을 띄워놓는 그가 한심..

카테고리 없음 2019.11.21

포스터컬러의 추억

나의 초등학교 시절 돌이켜보면 글쓰기 하는 시간이 꽤 많았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쓴 글에 담임 선생님이 공개적으로 칭찬을 해줬고, 그때 나는 학교에 들어가고 처음으로 인정받는 다는 생각에 기뻤던 것 같다. 자신감을 회복한 나는 다음 해 살면서 처음으로 부반장이란 걸 해봤다. 친구도 늘 많지 않았는데 4학년 생일 파티 (당시는 생일잔치라는 말을 썼었다.) 때 정말 많은 친구들이 와줬다. 특히, 포스터컬러를 사왔던 모군은 지금 돌이켜보면 나에게 어느 정도 호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애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애가 사왔던 선물이 포스터컬러라는 것과 그 애가 수줍게 웃었던 것, 13평 낡은 아파트 우리집 공간 안에 그 애가 앉아있는 장면이 박제된 스틸컷처럼 내 기억 한 편에 남아있다.

카테고리 없음 2019.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