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살, 처음으로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대리님, 과장님이 밥 사주실 때마다 ‘학생이어서 좋겠다’, ‘어려서 좋겠다’, ‘교환학생 곧 간다니 좋겠다’ 하며 이번주도 로또가 안됐다며 로또만이 답이라는 얘기를 늘어놓곤 했다. 국내에서 탑인 식품회사를 다니면서 매일 간식으로 도너츠와 커피도 나오는 좋은 회사인 것 같은데 왜 늘 로또 타령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스물일곱, 입사 후 한창 일을 많이 하던 대리 시절, 전날 야근하고 아침에 출근하면 사수 모니터에는 늘 클리앙이라는 커뮤니티가 떠있었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낄낄거리며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사수가 미웠다. 집중해서 같이 일을 쳐내도 모자랄 판에 오전 시간은 늘 커뮤니티를 끼고 살고, 모니터 한 켠에는 늘 ‘무한도전’ 영상을 띄워놓는 그가 한심해 보였다.
스물 여덟에서 아홉을 넘어갈 때 즈음인가 엄마가 넌지시 언니와 나에게 ‘너희들도 슬슬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는 나이다’라고 말했을 때 언니와 나는 무슨 벌써 결혼이냐며 딸 시집 보내는 데 목숨거는 것처럼 엄마를 매도했다.
서른 여섯이 된 지금의 나는 ‘그래도 밥값은 해야지’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수의 말처럼 밥값을 해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임을 알아버렸고, 이왕지사 결혼을 할 것이라면 좀 더 어렸을 때 엄마 말을 들을껄 이라는 후회를 한 지 몇 년이 지난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매번 인턴이 들어올 때마다 ‘니들 어려서 정말 좋겠다’를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다.
시간이 흘러야, 지나야 조금은 이해되고 알게 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