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장생활 분투기

나의 직장 생활 분투기 -01. 조직개편 그 후

구르미그린달빛아래 2023. 8. 10. 21:27

모든 회사 스트레스의 근원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버티는 자들이 어떻게든 자기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아주 작은 희망의 끄트머리라도 기회라고 주장하며 일을 해내라고 던지는 데 있다고 수정은 생각했다.

“LG
에 제안할 거 있는지 알아보세요. 고객사 후킹 할 수 있게 미국 케이스 스터디 자료 넣으면 좋을 것 같네요.”

갈 곳 없는 자들은 대체로 높은 직급의 사람들이다. 한 때는 각자의 자리에서 유능하다고 이름을 날렸던 그래서 승진을 거듭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성장이 멈춰버린 그들은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답습하며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회의에서 흘러나온 그녀의 한 마디는 직급체계의 단계를 타고 내려오며 눈덩이처럼 불어나 안 그래도 바쁜 일상에 또 짐을 얹는다.  

오늘도 대환장파티군. 여긴 답이 없다. 답이 없어.’

수정은 줌미팅 창을 닫으며 나지막이 내뱉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40분을 지나고 있었다.

밥이라도 먹어야겠다.’
수정은 집을 나섰다.
5
월의 날씨는 수정의 마음도 모른 채 싱그러웠고 그래도 나와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니 기분은 한결 나았다. 그나마 재택을 하고 있어 회사 사람들과 최대한 덜 마주칠 수 있는 게 위안이라면 작은 위안이었다. 수정은 기분 전환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후 집에서 15분 정도 걸어서 갈 수 있는 브런치 집에 도착하여 뭘 먹으면 기분이 더 나아질 수 있을 지 한참을 고민하며 메뉴판을 들여다보다 스테이크 150g이 얹어진 크림 리조또를 주문했다. 하루 한 끼는 밥을 꼭 먹어줘야 한다는 게 수정의 신조였다.

주문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삼삼오오 이야기 꽃을 피우는 주변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메뉴가 나오길 기다리며 수정은 주변 테이블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무용학과를 졸업한 20대 젊은 여성과 어머니가 여성의 고등학교 은사님쯤으로 보이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꽃피우고 있었다. 신랑, 청첩장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보니 여성은 곧 결혼을 앞둔 것 같았다.

좋은 때다.’
남의 이야기지만 좋은 일은 좋은 일이라고 수정은 생각하며 20대에 결혼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생각했다. 요즘 결혼 적령기보다는 한참 이르다는 생각을 하니 문득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의 얼굴이 궁금해져 건너편 벽에 걸린 그림을 보는 척하며 힐끗 그녀의 얼굴을 훔쳐봤다. 누구나 처음 본 사람도 미인이라고 말할만한 얼굴이었다. 수정은 오늘 처음 스치듯 본 그녀의 남편은 누구일지, 어떤 직업의 사람일 지 궁금해졌다.

분명 전문직일꺼야. 그러니 결혼을 이른 나이에 서두르는 거겠지?’

수정이 쓸데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들의 신혼집의 위치까지 짚어보던 찰나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해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