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고민의 진짜 이유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마치고 헤어질 무렵 그는 자꾸 연말데이트를 특별하게 하고 싶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랑 크리스마스 때 갔던 곳 모두 좋아하지 않았냐며 연말 데이트이니만큼 나를 즐겁게 해주고 싶고 내가 웃는 걸 보는 게 좋다고 했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 들어 내가 데이트할 때 지루해하고 잘 웃지도 반응하지도 않아 고민이라는 그의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후 어쩐지 그가 안쓰러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 전화의 끝에 ‘연말데이트 장소 고민’으로 비춰졌던 그의 고민의 근원적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는 직장에서 두 달 정도 큰 규모의 행사를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성공적으로 치뤘고 주변에서 칭찬도 들었지만, 행사를 준비하는 담당자에게 의례적으로 주는 상을 받지 못했다. 그것도 평소 남자친구를 아껴주는듯해보였던 상위 직급자의 입김이 컸다는 걸 뒤늦게 알고 무척 낙담했다. 요즘 일하기 싫다, 열심히 해도 소용없다, 나 이제 회사에서 설렁설렁 할꺼야, 의욕이 없다 라는 말이 종종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었다. 여기까지는 나도 아는 스토리.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가득차 있던 그의 마음에 지원한 상급기관도 떨어지고 1월 발령도 원하는 부서로 가지 못하는 현실이 더해졌다. 상처입은 마음은 연인관계에서까지 확장되어 내가 조금만 덜 웃고 반응이 예전같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데이트 장소를 특별하게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그제서야 데이트때마다 자꾸 나의 반응을 살피며 요즘 들어 자주 시무룩해하고 서운해하던 그의 모습이 이해가 됐다. “나 요즘 의욕이 없어요” 하던 그의 말이 힘들다고 보내는 시그널임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우리는 때때로 나의 못난 모습을, 작아진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눈에 보이는 이유를 둘러대곤 한다. 가장 가깝다는 가족과 연인에게조차.
한편으로는 나를 정말 힘들게 하는 원인을 나조차도 제대로 모르고 있기도 하다. 그걸 직면하는 건 내 자신에게조차 너무 상처가 되는 일이어서 덮어두고 있었기에.

사실 우리의 걱정,고민,두려움의 끝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다른 진짜 이유가 숨어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