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생

오늘 집에와서 저녁을 먹는데 식탁 위에 낯익은 엄마글씨로 여러 메뉴가 적힌 종이가 올려져 있었다.
“엄마 이거 뭐에요? OOO (동생이름) 오면 해주려고?”
“응~~”
“OOO이 좋아하겠네. 근데 뭐 이렇게 많이 준비해요..”
작년 여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 방학을 맞아 잠깐 한국에 들어오게 된 아들에게 이것저것 해주고 싶으신 음식이 많은 모양이다.
나에게는 나보다 다섯 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26살이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벌써 4살된 딸을 둔 어엿한 아빠이기도 하다.
동생하면 여러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새로운 환경에 가면 유독 긴장을 많이 하는 동생은 군입대를 위해 논산훈련소에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빳빳하게 굳은 표정으로 원래도 까만 얼굴이 더 까매져 있었다. 엄마가 동생이 좋아하는 치킨 등 여러 음식을 준비했지만 동생은 거의 먹지 못했다. 그렇게 긴장해 있는 동생 옆에서 나는 “야 OOO 너 이거 안먹으면 내가 먹는다”라며 치킨을 뜯었고, 훈련소에 도착해서는 “야 OOO 여기서 누나 사진 좀 찍어줘”라며 진상을 부렸다. 나와 엄마는 동생 입대에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고, 마음이 약한 우리언니만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드라마나 영화볼 땐 잘 우는데..진심 눈물이 안나더라. 동생을 좋아하고 친하지만 눈물이 나지 않는 걸 어째)
내가 회사에 입사해서 바쁘게 지내던 시기 대학생이었던 동생은 필요할 때만 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주로 시험기간에 자기가 먹고 싶은 간식을 부탁하는 거다.
“작누님.오는 길에 지렁이 하나만.”
“작누님. 딸기우유좀 굽신”
나는 기분이 내키면 사가고 아니면 그냥 집에가서 “야 니가 사다먹어”라고 하기도 했다.
동생은 라면을 참 잘 끓였는데 “짝누나 라면 끓일 건데 먹을거임?”물어보면 안먹는다고 해놓고 다 끓이면 “나 한입만..”이라면서 젓가락을 들고 나서서 거의 절반 가까이 먹어서 동생의 짜증을 유발하곤 했다. (달콤한 인생이라는 웹툰에 보면 누나와 남동생의 이런 관계를 묘사한 컷이 있다)
동생이 5-6살, 내가 10-11살 무렵 교회를 갔다 집에 돌아오는 엄마 차 뒷좌석에 앉아 나는 소위 ‘아기곰 엄마곰’ 놀이를 하며 동생의 간식을 강탈하곤 했다. 내가 아기곰이 되어 ‘엄마 간식 주세요’라고 말하면 동생은 교회에서 탄 간식을 내 입에 하나씩 넣어주며 ‘자 여기있어요’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무렵에야 동생은 문득 그때 생각이 나면서 나에게 당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언젠가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하다가 그때 누나랑 아기곰엄마곰 놀이하려고 다른 애들은 다 간식 받자마자 먹는데 엄청 먹고싶었는데도 꾹 참고 챙겨왔었다는 얘기를 듣고 둘이 엄청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순진했던 그 아이는 자라서 내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울먹일 때 데리고 나가 산책도 시켜주고 말없이 내가 쏟아내는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놀이터에서 그네를 밀어주기도 하는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리지만 때론 오빠같은 동생이 되었다.
동생이 박사과정 유학을 떠나기 전에 가족들에게 석사논문을 한권씩 선물하면서 앞 장에 편지를 써주고 갔는데 나에게 쓴 편지 말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누나 항상 고맙고 누나가 내 누나여서 매우 좋다 ㅋㅋ 딱 둘째누나로 딱인듯 ㅋㅋ”
우리 언니가 내 동생에게 엄마같은 누나라면,
나는 진짜 누나같은 누나다.
그런 동생이 이틀 후면 한국에 온다.
만나면 밀린 수다를 떨어야겠다 :)